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나는 컨택트(Arrival)에 얽메여 있어

기억이란건 참 신기해

예상과는 다르게 동작하지

우린 시간에 얽메여 있어

특히 그 순서에...


그저 그런...

뻔하디 뻔한 상업 영화들의 범람으로 영화에 대한 기대를 져버리고 살던 어느 날 TV 속 한 영화 광고가 제 마음을 사로 잡았습니다.

"아, 보고싶다"


1월 말에 본 컨택트 광고였습니다.

2월초 개봉이라 바쁜 일상 속에 그런 영화가 있었는지도 까먹고 지낸 어느 날 우연히 영화나 볼까란 생각으로 들어간 CGV에서 운명처럼 다시 만나게 된 컨택트는 과연 광고대로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새로운 SF"가 맞았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정말이예요.


2016년 11월 11일에 개봉한 어라이벌(Arrival)은 드니 빌뇌브 감독 작품으로 에이미 아담스와 제레미 레너 등이 출연합니다. 테드 창의 SF 단편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구요. 국내에는 2017년 2월 2일 개봉하면서 제목을 컨택트로 수정했는데 여기에 대한 비판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도착이라는 뜻의 Arrival이라는 제목이 더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컨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나름 집중해서 감상한 입장에서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흥미롭지만 흥미진진하진 않았다... 정도네요. 단 하나의 장면도 놓치기 싫을 만큼 흥미로운 내용이지만 긴장감이나 몰입감은 전혀 없었습니다. 감독의 의도에선지 어째선지는 모르겠지만 좀 더 극적으로 연출이 가능한 부분도 분명 있었거든요. 저는 이부분이 조금 아쉬웠고 중간중간 지루할 뻔 했네요. 실제 지루하진 않았어요. "뻔"했다는 거죠.


이 영화의 장르는 SF지만 주제는 "언어와 사고"입니다.

혹시 사피어-워프 가설 아시나요? 저는 컨택트를 계기로 처음 알게 된 내용인데 그 주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인간은 객관적 세계에서만 사는 것도 아니고 보통 이해하는 것처럼 사회활동의 세계속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표현수단이 되는 특정한 언어에서도 상당히 영향을 받는다. 사람이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본질적으로 현실에 적응할 수 있고 언어는 의사전달이나 사고의 반영의 특정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우연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사실인즉 현실 세계는 상당한 정도로 그 집단의 언어습관의 기반 위에 형성이 된다. ... 우리의 공동체의 언어습관이 해석에 대한 어떤 선택의 경향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처럼 주로 보고 듣고 아니면 경험을 한다.

— 에드워드 사피어, 언어(1929, p207)


즉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내용인데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커가면서 어떤 직접적인 경험보다는 글이나 말로서 세상을 배우지 않습니까? 이 언어로 인해 우리의 생각에 제약이 가해지는 거라면... 사실 우리는 어마어마한 창의력과 시간을 초월할 수 있는 존재임에도 사용하는 언어적 한계 때문에 불가능했던 게 아닐까...


컨택트에서 12개의 외계비행물체가 12개의 나라 상공에 등장하는데 각 나라의 대응 방식이 다릅니다. 이 또한 사용하는 언어에 따른 사고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서겠지요.


아직 한창 개봉중인 영화이기 때문에 스포는 하지 않겠습니다.

엔딩 크래딧이 올라올 때 여운 때문에 바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런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네요.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입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네요. 단 재미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어려운 영화도 지루한 영화도 아니구요. 그냥 조금만 집중해서 편안하게 감상하고 나오시면 절대 후회할 영화는 아닙니다.


저는 인터스텔라 보다 좋았네요. 아니 소재가 너무 좋았어요. 곧 원작인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도 사서 읽어 볼 생각입니다.